/ 이 작품들을 감상해보십시오 - 서고
단편소설 《3년, 30년》(8)
2024년 창작

  《하긴 훈련이랑 잘했을거야. 정말이지 얼마나 이악한 처년가.》
  한철명은 옆구리에 끼고있던 영어교재를 아귀센 두손으로 힘껏 말아쥐며 땅이 꺼질듯 한숨을 내불었다. 그는 요즈음 외국어과목때문에 심히 골머리를 앓고있는중이였다. 체통 큰 사내가 고심하는 꼴은 정말 곁에서 봐주기가 힘들다. 학선이도 나도 돕느라고는 하지만 워낙 기초가 약하다보니 발전이 굼떴다.
  가뜩이나 나의 영어실력에 대한 부러움으로 가슴이 헐헐해있는 그가 설미에 대한 말까지 듣고나자 손맥이 더 풀리는 모양이였다. 초기에는 별로 실력이 높지 못하던 설미가 이제는 학급에서 당당히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비결이 궁금했었는데 학선의 이야기를 통해 그 모든것이 다 설명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런 설미가 나를 찾아왔다.
  《준민동지, 제가 꼭 도움받을게 있는데 도와주겠습니까?》
  나는 놀랐다. 선들선들 날을 세워 비판했던 일은 까맣게 잊은듯 설미의 동실한 얼굴에선 웃음이 바글거린다. 하긴 나도 사나이일진대 어떻게 처녀의 웃는 낯을 외면하랴.
  《뭔데? 내가 도울수 있다면야 물론…》
  설미는 기쁜 나머지 한걸음 바투 다가섰다.
  《준민동지 미술재간이 여간 아니라던데 내게도 좀 배워주십시오. 말하자면 내 스승이 되여달라는겁니다.》
  아하! 하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이제 곧 미술과목이 시작된다더니 이제야 설미도 바빠나게 된것이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떼고 물었다.
  《헌데 어느 정도 배우려고?》
  《그야… 남을 가르칠만큼 배워야지요 뭐.》
  과연 어이가 없다. 중학교때 여러해동안 미술소조를 다닌 나도 감히 누구를 가르칠 엄두를 못낸다. 아직도 가끔 전람회같은데서 훌륭한 그림을 보면 제것을 앗긴듯 속이 알알해지기도 하고 그에 가닿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에 한숨이 절로 새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처녀는 무슨 뜨개질을 배우는것쯤으로 생각하는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날 택했소? 선생님들도 계시는데…》
  나는 애당초 설미때문에 공연한 시간랑비를 하고싶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수 없었다.
  설미의 두눈이 생기를 띠고 반짝거렸다.
  《이번 겨울방학기간에 학급동무들의 미진된 과목들을 추켜세우자는겁니다. 선생님들은 강습이랑 새 교수준비랑 바쁘실테니 우리 학급에서 음- 과목별로 앞선 동무들이 뒤떨어진 동무들을 도와주잔 말입니다. 미술은 준민동지가, 외국어는 학선동무, 음악은 내가 맡고…》
  《그거 좋구만, 대찬성이요!》
  턱없이 큰소리로 설미의 말을 끊으며 불쑥 끼여든것은 아까부터 주위에서 어물거리며 귀동냥에 여념이 없던 한철명이였다.
  나는 난감해졌다. 딱히 그 의견을 반대할 근거도 없는데다가 나의 절반과도 같은 한철명이 벌써 쌍수를 들고나서는 판이니 밀막을 도리가 없었다.
  《다들 좋다면 한번 해보지 뭐.》
  미적지근한 나의 대답에 한철명은 손가락을 딱 튕기였고 설미의 동실한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문제없습니다. 다음학기부터 우리 학급을 최우등생학급으로 만들자는걸 아예 초급단체결정으로 누릅시다.》
  들고있던 수첩우에 종주먹을 찰싹 내리찧은 설미는 어느새 다른 동무들에게로 가버렸다.
  우리는 어리둥절하여 서로 마주보았다.
  다른 대학이라면 몰라도 우리 교원대학에서는 전과목최우등생이 백에 하나면 사실 많은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대학의 학생들에게는 사회과학이든 공학이든 자기의 뚜렷한 전공이 있고 이여의 과목들도 그를 위해 필요하다. 그래서 기초과목 또는 린접과목이라는 말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기초와 린접이 따로 없다. 한강의 수학문제와 씨름하다가도 다음강의엔 피아노와 마주앉는다. 수학이나 외국어뿐 아니라 누구나 문학을 알아야 하고 음악을 배워야 하며 미술과 체육도 할줄 알아야 한다. 지어는 무용까지도 가르친다.
  외국어를 두개, 세개씩 한다는 다른 대학친구들도 여기서는 최우등생이 되기 어려울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는 다과목수재들에게나 알맞는 곳이다. 그럼 우리는 수재인가?
  《준민동문 수재야. 뭐든 막히는게 없잖나.》
  가끔 나는 철명이에게서 이런 말을 듣군 한다. 그때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마음속으로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리군 하였다. 혹시 어머니는 이날을 위해 그토록 아글타글 나를 키워오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학창시절 나의 남다른 노력은 한갖 소학교교원이나 되자고 그런것이 아니였다.
  나의 생각이 어떻든 다음날로 결정은 채택되였고 구체적인 분담안이 세워졌다.
  어느새 한해가 저물어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