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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3년, 30년》(2)
2024년 창작

  《학선이가 부럽구만. 고작 체육때문이라니 얼마나 간단한가. 이 한철명이는 말이야…》
  주먹코 한철명은 아래입술을 잔뜩 내밀고 말꾸리를 이었다.
  《난 사실 소학교때부터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 형편없는 장난꾸러기였으니까. 게다가 아버지가 군관이라 이사는 왜 그렇게 자주 하는지.… 중학교때도 공부에 별로 재미를 못붙이고있다가 졸업반이 거의 되여서야 정신을 차렸지만…》
  번열이 나는지 한철명은 목단추를 활 열어제꼈다.
  《그래 강심먹고 달라붙었지만 늦었더군. 워낙 기초가 약하니 될턱이 있나? 내 이거 지나간 옛말을 자꾸…》
  나는 잠자코 들었다. 학선은 눈빛이 총총하여 뒤를 재촉했다.
  《그러니 철명동지스스로가 교원대학을 지망했습니까?》
  《그래, 난 교원이 되자는거네. 군대때도 짬짬이 공부를 하면서 후날 꼭 선생님이 되리라고 결심했지. 내가 교단에 서면 나와 같은 장난꾸러기학생들을 꽉 붙들고 절대로 놔주지 않을테야. 어때? 우리 정치지도원동지도 적극 지지해주더군.》
  《입학시험은 어떻게 쳤게?》
  내가 묻자 철명은 히죽이 웃었다. 주위를 한번 휘둘러보더니 비밀이라도 터놓는듯 속삭였다.
  《전우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죽어라고 공부했지. 믿어지진 않을테지만 난 말일세, 리해하기 어려운 어떤 수학문제들은 그 풀이를 통채로 외웠어. 본시 여기가 나쁜건 아닌가봐.》
  굵다란 손가락으로 관자노리를 두드리며 철명은 껄껄 웃었다. 하지만 바로 이날을 위해 그와 그의 전우들이 기울였을 수많은 노력에 대하여 나는 어렴풋이나마 짐작할수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내게로 향한 두사람의 시선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 차례가 된것이다.
  뭐라고 할것인가? 대학추천과 입학을 전후하여 벌어진 여러가지 일들이 화면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몇차례의 담화, 어머니의 권고…
  《나도 교원이 되자고 왔소, 이게 다요.》
  나의 입에서는 단순하고 명백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실지로는 더없이 애매한 대답이기도 했다.
  《?!》
  뭔가 더 설명을 바라는 두사람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창문쪽으로 아니, 창문이 들어앉게 될 휑한 구멍쪽으로 얼굴을 돌려버린 나는 그만 와뜰 놀랐다.
  한 처녀가 오똑 서서 우리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동실한 얼굴, 역시 동그란 눈, 어디서 보았던가?…
  《설미누이가 아니야?》
  학선이 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누구?》하고 한철명이 깔고앉았던 블로크까지 넘어뜨리며 창구멍에 다가섰을 때에는 이미 처녀의 자그마한 뒤모습이 또각또각 멀어져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