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치 - 기타
다기대, 다추운동으로 새기록, 새기준을!
  다기대, 다추운동은 1960년대, 1970년대 우리 나라의 방직공업부문에서 벌어졌던 애국운동입니다.
  그 시기 방직공업부문앞에는 2억 5 000만m의 직물을 생산할데 대한 과업이 나서고있었습니다.
  평양방직공장(당시)의 로동계급은 우리 인민들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처럼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다기대, 다추운동을 벌릴것을 궐기해나섰습니다.
  직포공들은 기대당 보수시간을 줄이고 직포기의 리용률을 높여 매일 2만여m에 달하는 천을 더 생산하였으며 어느 한 직포공은 혼자서 72대의 직기를 맡아 천생산에서 새기적을 창조하였습니다.
  당시 방직공업부문에서는 3년이상 직기를 다루지 않고서는 다기대를 다룰수 없다는것이 관례로 되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애국운동으로 하여 기술신비주의가 산산이 부서지고 공장에 들어온지 1년밖에 안되는 직포공들은 기능공들의 도움을 받아 모두가 다기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직포공들만이 아니였습니다. 정방공들은 1 200추로부터 최고 4 300추를 다루었으며 수많은 정방공들이 3 000추, 3 500추의 방추를 맡아 매일 수십t의 실을 더 생산하였습니다.
  다기대, 다추운동은 다른 방직공장들에로 확대되여갔습니다.
  구성방직공장의 직포공들은 서로 방조하면서 저마다 많은 직기를 맡을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실천에 옮기였습니다.
   이처럼 방직공업부문의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을 지니고 다기대, 다추운동을 힘있게 벌려 우리 공화국의 발전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기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왔고 세대도 바뀌였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1970년대에 발휘되였던 방직공업부문 로동계급의 투쟁정신, 투쟁본때는 오늘도 굳건히 계승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