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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3년, 30년》(13)
2024년 창작

6

  다음날 우리 집 문을 다시 두드린것은 다행히도 철명이 혼자였다.
  반갑게 맞아들이는 어머니에게 한바탕 너스레를 떨고난 그는 내 방에 들어서자 주먹코부터 찡긋했다.
  《이 철명이 초급단체비서 특사로 왔네.》
  《그래? 이거 영접곡을 준비 못해 어쩐다?》
  《영접곡까지야 무슨… 한상 차리면 되지!》
  우리는 한바탕 롱질을 주고받고나서 마주 앉았다.
  《자넨 어제 너무했어.》
  철명이 정색하여 하는 말이였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아, 그가 가면서 뭐랬나? 울던가?》
  《울기는… 대학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이 없다가 문득 <준민동지는 아직 우리 선생님을 다는 모릅니다.>라고 하더구만.》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렇다면 설미는 어머니에 대해 이미 알고있었단 말인가?!
  《어제 자네가 준 그림을 보고나서 설미동무가 감탄하더군. 그런데 모색은 신통하지만 지내 늙어보이신다는거네.》
  《?!》
  《그러면서 내게 이야기를 하나 해주더군, 들어보겠나?》
  철명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결론해버렸다.
  《하긴 동무도 꼭 알아둬야 할것같애.》
  아예 멍청해진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철명은 빙그레 웃었다.
  마치도 솜씨있는 이야기군이 말꼭지를 떼고 상대의 반응을 지켜볼 때처럼 능청스런 미소였다.
  그리고는 안타까울만큼 뜨직뜨직 이야기를 해나갔다.
  … 설미가 빨간 령장우에 금방 줄 하나를 얹었던 어느 여름날이였다.
  불의에 포사격훈련명령이 떨어졌다. 야무진 구령소리가 간단없이 울리는 속에 갱도문을 박차고나온 육중한 해안포들은 어느새 지정된 사격진지를 차지하였다.
  녀병사들의 움직임은 하나같이 신속하고 정확하였다.
  검푸른 바다를 향해 내여뻗친 강철포신들이 바야흐로 목표를 찾고있을 때 뜻밖에도 《포장과 조준수 부상, 조준경 파괴》라는 극악한 정황이 가상되였다. 하여 포의 사격지휘를 맡게 된것은 입대한지 1년밖에 안된, 중대의 손풍금수 설미였다.
  《알만하지? 설미동무, 목측에 의한 조준!》
  때아닌 《부상》을 당하여 진지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준수처녀가 설미의 곁을 스쳐지나며 재빨리 속삭였다. 설미도 그것을 알고있었다.
  늠실거리는 물우로 목표가 나타났다.
  훈련에서 제외된 구대원들은 조여드는 가슴을 붙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설미만 지켜보았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주먹을 겨누어들고 사격제원을 구하고있는 설미의 입은 인차 열리지 않았다.
  사실 목측의 방법으로 사격제원을 구하는것은 까다로운 고등수학이 아니였다. 하지만 수학적원리에 기초한 재빠르고도 정확한 속셈을 필요로 한다.
  설미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중학시절에도 자신의 수학성적이 높지 못했음을 피뜩 상기했고 애써 얻어낸 답에도 선뜻 확신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종이우에 답을 적는 교정의 시험장에 앉아있는것이 아니였다.
  단 한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긴장감으로 하여 설미는 숨쉬기조차 가빠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이외의 다른것에 별로 관심과 흥미를 가져본적 없는 설미였다.
  군복을 입고 처음 무기를 수여받았을 때 그는 그 짤막한 총번호마저도 《도미쏠씨레쏠》하고 수자악보의 한 소절로 외웠다.
  놀라와하는 전우들에게 설미는 부끄럼없이 대답하였다.
  《난 이렇게 해야 더 잘 기억해.》
  마침내 설미의 입이 열렸다. 포문도 입을 열었다. 벽력같은 포성과 함께 물우의 검은 목표는 흰 물기둥속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명중이였다. 하지만 환성이 터져올라야 했을 진지와 참호들은 쥐죽은듯 고요하였다.
  이미 기준시간을 초과한 뒤였던것이다.
  설미는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아버렸다.
  중대군인들은 초조한 눈길로 훈련결과에 대한 평가가 내려질 전방감시소쪽만 묵묵히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수 없었다.
  전방감시소에는 그들이 꿈결에도 뵙고싶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