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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3년, 30년》(9)
2024년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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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날 저런 처녀에게 누가 장가들겠는지 참… 이건 꼭 딱따구리 한가지라니까.》
  이것은 설미에게서 음악과목을 방조받고있는 한철명이 내게 한 말이였다.
  시간별로 꼭꼭 과제를 주고 받아내는데 반죽좋은 한철명조차도 꼼짝 못하고 피아노앞에서 악마디진 손가락을 구불거리며 하루해를 꼬박 지운다는것이다.
  《흥, 제일먼저 찬성한건 누군데 벌써부터 우는소린가?》하고 한바탕 시까스르려던 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오죽이나 힘에 겨웠으면 철명의 입에서 저런 말까지 나오랴.
  《공연한 걱정입니다. 설미동지한텐 벌써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던데요 뭐. 하긴 설미동지가 따라다니는것같기도 하구…》
  체육복차림의 학선이 두손을 호호 불며 다가왔다. 나와 철명은 그에게 철봉을 배워주고있던 참이였다.
  《정말?》
  우리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럼요. 이따금 집에 찾아오기도 하는데 멋쟁이예요, 대학교원이라던지 박사원생이라던지.…》
  《쬐꼬만게 뭘 안다구 그래? 자, 이번엔 평행봉!》
  한철명이 성난듯 소리치자 학선은 찔끔해가지고 평행봉쪽으로 다가갔다.
  나도 어쩐지 속이 좋지 않았다. 하긴 뭐 리해 못할것도 없었다.
  《학선동무, 그만하고 이리 좀 오라구.》
  언제 그랬던가싶게 철명은 다시 은근한 어조로 학선을 불렀다.
  《이자 그거 동무의 눈으로 직접 봤어?》
  학선은 어딘가 겁먹은 표정이다.
  《몇번이나 봤습니다. 그 사람이 왔다갈 때면 설미동지가 현관앞에까지 따라나와 바래주군 하는걸요. 헌데… 그게 나쁩니까?》
  이런 천진한 애숭이…
  나와 철명은 웃고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나이들답게 처녀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약속했다. 더구나 초급단체비서의 위신도 생각해줘야 했던것이다.
  오후시간이 되자 설미는 나와 함께 화판에 마주앉았다.
  《자! 또 해보자구.》
  사실 속으로는 퍼그나 지겨운 일이였다.
  그리고 남의 비밀을 알고 시치미를 떼자니 이번에는 내가 위선자가 된 기분이였다. 목소리도 어딘가 내것같지 않았다.
  헌데 내 《제자》의 그림솜씨는 상상밖으로 한심했다.
  《동문 학교때 대체 뭘했소? 미술은 아예 락제로구만.》
  설미는 처음으로 그답지 않게 호- 한숨을 내불었다.
  《난 소학교때부터 음악밖에 몰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유명한 피아노연주가가 되고 싶은게 어릴적의 내 꿈이였으니까요. 그건 우리 어머니가 내게 심어준 꿈이였답니다. 게다가 담임선생님도 음악을 무척 사랑했구요.》
  뒤는 들으나마나였다. 음악에 미쳐 다른 과목을 소홀히 했다는 말이 나올것은 뻔하였다. 중학시절 음악소조의 일부 처녀애들이 바로 그랬다.
  《어느 소학교에 다녔게?》
  맞춤한 연필 하나를 골라쥐며 나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류성소학교.》
  나는 흠칫 놀랐다. 어떤 불길한 예감이 갑자기 온몸을 휩쌌다. 어머니가 교원으로 있던 바로 그 소학교였다. 혹시?…
  손에 쥔 연필끝이 가늘게 떨리였다. 그 선생님의 이름을 묻고싶었으나 왕청같은 말이 튀여나갔다.
  《그러니 그 선생님때문에 동무가 지금…》
  《아니요.》 하고 단호히 부정해버린 설미는 아직 아무것도 그려넣지 않은 흰종이우에 무슨 티라도 있는듯이 애꿎은 지우개질을 해댔다.
  《그건 다 제탓입니다. 음악을 한답시고 붕떠다니면서 다른 과목들과는 거의나 담을 쌓고 살았거던요.》
  나는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설미가 자신을 탓하기는 하지만 그의 소학교시절 선생님에 대한 추억의 밑바닥에 아름답지 못한 그 무엇이 깔려있음을 륙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동무는 왜 음악대학에 안갔소?》
  설미는 두볼을 볼록 불구어 지우개밥을 날려버렸다.
  《지망은 했지만 성적이 낮아서 그만…》
  《?!》
  그때 나의 표정은 심각하였으나 설미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