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 집
인민이 사는 곳 그 어디에나
  이민위천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좌우명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을 인민들속에 계시며 오로지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바치시였습니다.
  인민이 사는 곳 그 어디에나 인민들을 위해 새겨가신 그이의 헌신의 발자취가 새겨져있습니다.

한평생 걸으신 포전길

  우리 인민들의 가슴마다에는 포전길을 걸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이 소중히 간직되여있습니다.





  1945년 나라가 해방된 후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근 50년세월 포전길을 걷고 또 걸으시며 농장원들과 함께 벼모도 꽂으시고 그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농사문제도 의논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변의 농장들과 두메산골의 농촌마을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다 찾아가시였습니다.
  1993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0고령에도 황해남도의 여러 농장들을 찾으시였습니다.
  먼길을 달리신 피로를 푸실 사이도 없이 이른 새벽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여러 군의 농장들을 현지지도하신 그이께서는 점심시간에는 휴식도 뒤로 미루시고 황해남도 책임일군들의 협의회를 여시였습니다.
  그날 협의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황해남도의 농사가 중요하기때문에 어떤 때에는 국가주석을 그만두고 황해남도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도하는 고문노릇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군 한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진정 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을 잘 살게 하는것은 그이께서 평생 바라신 념원이였습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우리 나라 농촌들가운데 가보지 않은 곳이 별로 없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농촌경리부문을 지도하기 위하여 농장들에 찾아다닌것만 하여도 수십만리는 될것이며 농장원들을 만나 담화한것만 하여도 수만명이 될것이라고 감회깊이 추억하시였습니다.
  우리 인민들에게 백미밥에 고기국을 먹이시려고 그토록 마음쓰시며 한평생 포전길을 걸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리 인민은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습니다.
 
인민들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시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들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시려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방직공장과 제사공장, 편직공장들을 일떠세우도록 하시였습니다.
  선교편직공장은 1960년대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발기에 의해 일떠섰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공장에서는 여러가지 편직옷들을 생산하여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해왔습니다.
  선교편직공장 강사 장설옥은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가 있어 공장이 능력이 큰 편직생산기지로 전변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공장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지지도자욱이 곳곳마다에 어려있습니다.
  녀성종업원들이 대다수를 이루고있는 우리 공장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차례나 찾으시였습니다.
  오시여서는 일이 힘들지 않는가, 몇시간 일하는가, 식사질은 어떤가에 대해서도 친어버이의 다심한 사랑과 정으로 물어주시고 로동조건과 생활보장에 대해서도 관심해주시였습니다.
  그리고 인민들이 즐겨찾는 여러가지 질높은 옷들을 생산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장에서 만든 제품들을 보아주시며 잘 만들었다고 평가해주시고 인민들이 즐겨찾는 편직제품들을 많이 생산하여 공급해야 한다고 당부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습니다.
 
  이렇듯 인민을 위해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자욱은 공장과 농촌 등 이 땅 그 어디에나 새겨져있습니다.
  자신께서 일을 많이 해야 나라가 흥하고 인민들이 잘 산다고 하시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현지지도의 길에 계신 그이이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길은 지구를 14바퀴반 돈것과 맞먹는 거리인 57만 8 000여㎞에 달합니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을 천만년 길이 전해갈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