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성근로자, 그 부름은
50년간이라는 그의 교원생활은 이 학교에서 흘러갔습니다.
교원으로 사업하던 그때부터 최영애는 깨우쳐주는 교수방법을 구현하여 학생들을 높은 실력을 지닌 앞날의 역군으로 훌륭히 키워냈습니다.
분과장, 부교장을 거쳐 교장으로 사업하면서 그는 교원들이 항상 후대들의 앞날을 책임지고 교육사업에 온 넋을 기울여나가도록 교양사업을 강화하고 그들의 교육자적자질을 높여주는데 정열을 기울였습니다.
몇년전 한 처녀교원의 학급에는 학교생활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홀
교장에게서 따뜻한 어머니의 정을 받아안은 학생은 그후 공부에 전심전력하였으며 대학에 입학하게 되였습니다.
학교의 매 교실들에서는 자그마한 함을 볼수 있습니다.
함에는 교복수리에 필요한 여러 색갈의 천들과 바느실, 단추 등이 들어있습니다.
어머니마냥 학생들에게 바쳐가는 사랑을 엿볼수 있게 하는 이 자그마한 함은 최영애교장이 발기한것입니다.
학교의 교원들은 교실마다 이 함을 구비해놓고 학생들의 옷차림을 보살펴주고있습니다.
소학교교육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할수 있게 학교의 교육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데서도, 학생들이 소질과 개성에 따라 재능을 키울수 있게 수십개의 과외소조를 운영하는데서도 그는 언제나 전국의 앞장에 섰습니다.
최영애교장은 말합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사랑은 자기 일터에 대한 사랑을 낳고 자기 일터에 대한 사랑은 성실한 땀과 헌신의 자욱을 남기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우기
최영애교장은 2012년에는 인민교원으로, 2017년에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되였습니다.
수도 평양의 선교영화관에서 영화기술원으로 일하고있는 여순영은 54년동안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이바지한다는 긍지를 안고 영화보급사업에 자신의 모든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쳐오고있습니다.
1970년대에 영화기술원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주요건설장들에 나가 하루에도 몇회씩 영화를 상영하였습니다. 그 나날 여순영은 영사기들을 개조하고 화면과 록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하여 이악하게 노력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새로 나온 영화들을 기동성있게 보급하기 위해 밤낮이 따로 없는 헌신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영화에 심취되여있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영화보급원들이 긴장한 한초한초를 보내면서 설비를 다룹니다.
오랜 세월 무려 수만회의 영화를 상영하여 수도시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적극 기여한 그는 2013년에 공훈영화기술원이 되였습니다.
명절날에도 깊은 밤에 들어서군 하던 어머니를 보며 응석부리던 어린 자식들도 어머니의 생의 자욱자욱을 지켜보면서 삶의 진가를 배우며 성장하였습니다.
조국보위를 최대의 애국으로 여기고 그의 아들들인 박영철, 박순일, 박성일은 조선인민군 군관으로 자신들의 삶을 빛내여가고있습니다.
녀성근로자라는 부름을 빛나는 영예로 여기고 한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조국이라는 큰 뜨락에 몸을 잠그고 한생을 바쳐가는 어머니들, 그들의 모습은 이 땅의 수많은 자식들에게 인생과 애국의 참뜻을 깨닫게 하여주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