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학교》

지난해 8월 려관의 호실들이 교실과 실험실로 꾸려지고 여기서 5 000여명의 학생들이 130일간 공부하였습니다.
오늘
2024년 7월 27일 기록적인 폭우로

당시 일군들은 복구사업에만 치중하면서 어린이들과 학생들에 대한 보육과 교양, 교육문제에 대하여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학생들의 교복과 책가방, 교과서와 학용품, 신발보장대책이 세워지고 4.25려관에 5 0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할수 있는 교실과 실험실을 꾸리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여 온 건물이 하나의 완벽한 학습공간, 교양공간으로 변모되고 이동교육대가 조직되였습니다.
8월 15일 평안북도뿐 아니라 자강도, 량강도의 수해지역 어린이들과 학생들도 평양에 도착하였습니다.



유치원어린이들과 소학반 학생들이 책가방을 메고 하루에 걷는 거리와 시간까지도 헤아려보시고 그들이 뻐스를 타고 학교로 오갈수 있도록 조치도 취해주시였습니다.



교실들에 갖추어진 교구비품과 교육설비들은 하나하나가 다 당에서 품들여 마련해준 훌륭한것들이였고 이동교육대 성원들은 한명한명이 다 평양시안의 여러 교육기관들에서 특별히 선발된 실력높은 교육자들이였습니다.







결과 수해지역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실력은 평양시의 우수한 학교 학생들의 실력과 대등하였으며 그들가운데서 근 50명의 대학입학생들이 배출되였습니다. 입학후 이들의 실력도 아주 높다고 합니다.
한편 많은 학생들이 고마운 조국을 총대로 지키는 조국보위초소로 적극 탄원하였습니다.
이 모든것은 평양에서의 130일간의 교육이 낳은 귀중한 결실입니다.
4.25려관에 꾸려진것은 단순히 림시학습공간이 아니였습니다. 그곳은 수도와 지방, 도시와 농촌간의 교육수준에서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본보기가 마련되고 지방의 아이들도 얼마든지 높은 실력을 지닌 인재들로 키울수 있다는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학교》였습니다.
이제는 4.25려관에서 어제날의 교실들과 실험실들을 찾아볼수 없고 아이들의 랑랑한 글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산골마을의 작은 분교에도 자기 이름이 있건만 나라의 교육발전로정에 그렇듯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긴 이 《학교》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굳이 부름이 있다면 그것은 수해지역 아이들이 정담아 부르는 《평양의 <
수해지역 학생들이 수도 평양에서 공부할 때 리용하던 교구비품과 교육설비, 체육기재들은 그후 당의 은정어린 조치에 의해 그대로 그들이 공부하는 학교들에 보내여졌습니다.
그들은 평양에서의 배움의 나날들을 언제나 추억할것입니다. 후대들을 위하여 모든것을 아낌없이 기울이는 조국의 사랑을 잊지 않고 애국의 한길을 걸어갈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