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40여년
1945년 8월 15일은 조선인민이 40여년간의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해방된 날인 동시에 《아시아의 맹주》라고 일컫던 일제가 무릎을 꿇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입니다. 그때로부터 8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전대미문의 파쑈통치
문화재략탈만행

고분을 도굴하는 일제침략자들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통치기간 일제가 파헤친 고구려시기 고분만도 1400여기. 이 수자는 선조들의 무덤까지 파헤치면서 조선의 문화재를 마구 략탈한 일제의 야만성과 파렴치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에 불과합니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 40여년간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깃든 문화재들을 마구 파괴략탈하였습니다.
16세기 말부터 조선의 문화재조사책동을 벌려온 일제는 1916년 7월 4일 《고적 및 유물보존규칙》을 공포하고 《조선고적조사위원회》, 《조선〈총독부〉박물관》, 《고적보존회》등 전문적인 략탈기구들을 조작하였습니다.
조선강점기간 일제가 략탈해간 문화재는 초보적으로 알려진 자료에 의하더라도 현재 도꾜국립박물관에 진렬된 조선문화재 4만여점을 비롯하여 고려자기, 민족고전 등 수십만점이나 됩니다.
일제는 각종 명목으로 략탈해간 조선문화재들을 뻔뻔스럽게도 일본의 《국보》로 공개하는 놀음을 벌리다못해 돈벌이수단으로까지 리용하였습니다.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조선민족멸살을 위해 온갖 비렬한 책동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습니다.
《황국신민화》책동이 그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일제는 1939년 11월에 조선사람의 고유한 성과 이름을 없애고 그것을 일본식으로 고칠데 대한 법령을 조작공포하고 총칼의 위협과 강도적인 방법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였습니다.
일제는 모든 경찰서와 주재소, 파출소들의 경찰들을 총동원하여 조선사람들을 총칼로 위협하면서 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징용》,《보국대》등에 누구보다 먼저 끌어갔으며 여러가지 제재조치들을 취하면서 탄압에 날뛰였습니다.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책동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황국신민정신》강요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에게 《황국신민정신》을 강요하기 위해 별의별 너절한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습니다.

《황국신민정신》을 강요하는 일제침략자들
일제는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모아놓고 일본국기라고 하는 《히노마루》에 절을 하게 하였으며 일본《귀신》을 믿게 한다고 하면서 엉터리로 만들어낸 저들의 《시조》인 《아마데라스 오미까미》(천조대신)에게 절을 하게 하는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1943년부터는 《가미다나》라는 일본식귀신상자를 만들어 집집마다 걸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온 식구들이 모여 절을 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일제는 일본《천황》의 안녕과 일본침략군의 승리를 빌게 한다고 하면서우리 인민에게 매일 정오가 되면 일본《천황》의 《궁성》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정오묵도》라는 《궁성요배》를 강제로 시켰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제는 1937년 7월 《황국신민서사》라는 《맹세문》을 만들어 매일 아침 학교들과 기관들에서 의무적으로 일본말로 소리내여 외우게 하였습니다.당시 《서사》에는 《첫째로,우리 들은 황국신민이다.》라는것으로 시작하여 모든 고통을 견디여내면서 《천황》에게 《충성》다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져있었습니다.
력사에는 사람들의 성과 이름은 물론 그들의 민족정신과 넋까지 빼앗아 한 민족을 영원히 없애버리려고 그토록 악독하게 책동한 일제의 비렬한 범죄행위와 같은 실례가 없습니다.
40여년에 걸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사의 갈피갈피를 헤쳐볼수록 일제야말로 가장 악독하고 파렴치한 침략자이며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는것을 처절히 깨닫게 하고있습니다.
력사는 속일수도 다시 쓸수도 없습니다.
일본의 야만성과 도덕적저렬성, 파렴치성은 세기를 이어 쌓이고쌓인 피맺힌 원한을 기어이 풀고야말우리
인민의 의지를 더욱 굳세게 해주고있습니다.
일제가 조선에서 감행한 식민지통치는 력사에 류례없는 파쑈통치였습니다. 그것은 일제가 실시한 헌병경찰제도를 통하여서도 잘 알수 있습니다.
1910년 6월말 일제는 헌병과 보통경찰임무를 수행하는 일반경찰을 결합시켜 헌병경찰제도라는것을 조작해냈습니다.
조선강점군헌병사령관이 경무총감을, 각 도 헌병대장들이 도경찰부장을 겸임하게 하여 헌병이 군사경찰임무외에 이른바 《치안유지》에 관한 경찰임무까지 수행한다는것이 이 폭압제도의 골자입니다.
이에 기초하여 일제는 극악한 중세기적공포정치인 무단통치를 실시하였습니다.
초대조선총독이였던 데라우찌는 《조선사람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라고 떠벌이면서 헌병 및 경찰기구의 우두머리들에게 법적수속이나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선사람들을 마음대로 처형할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습니다.

시위대렬을 진압하는 일제경찰

애국자 들을 처형하는 일제경찰
이 중세기적이며 야만적인 폭압정책의 강행은 우리 인민을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잔악무도한 범죄행위였습니다.
일제는 쌓이고쌓인우리
인민의 민족적울분과 사무친 원한이 1919년 3월 전인민적봉기로 폭발하자 이에 겁을 먹고 종래의 무단통치를 기만적인
《문화통치》로 바꾸는 놀음을 벌려놓았습니다. 그해 8월 일제는 《조선총독부 관제개혁에 관한 조서》라는것을 발표하였습니다.
《관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일제는 종래의 총독을 현역무관만이 하게 되여있던것을 문관도 할수 있게 만들었으며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개편하였습니다.
일제가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개편한 후 경찰기관은 종전보다 줄어든것이 아니라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방대한 규모로 확장된 이 경찰폭압기구에 의거하여 일제는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습니다.
1910년 6월말 일제는 헌병과 보통경찰임무를 수행하는 일반경찰을 결합시켜 헌병경찰제도라는것을 조작해냈습니다.
조선강점군헌병사령관이 경무총감을, 각 도 헌병대장들이 도경찰부장을 겸임하게 하여 헌병이 군사경찰임무외에 이른바 《치안유지》에 관한 경찰임무까지 수행한다는것이 이 폭압제도의 골자입니다.
이에 기초하여 일제는 극악한 중세기적공포정치인 무단통치를 실시하였습니다.
초대조선총독이였던 데라우찌는 《조선사람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라고 떠벌이면서 헌병 및 경찰기구의 우두머리들에게 법적수속이나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선사람들을 마음대로 처형할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습니다.

시위대렬을 진압하는 일제경찰

일제는 쌓이고쌓인
《관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일제는 종래의 총독을 현역무관만이 하게 되여있던것을 문관도 할수 있게 만들었으며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개편하였습니다.
일제가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개편한 후 경찰기관은 종전보다 줄어든것이 아니라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방대한 규모로 확장된 이 경찰폭압기구에 의거하여 일제는
문화재략탈만행

고분을 도굴하는 일제침략자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 40여년간
16세기 말부터 조선의 문화재조사책동을 벌려온 일제는 1916년 7월 4일 《고적 및 유물보존규칙》을 공포하고 《조선고적조사위원회》, 《조선〈총독부〉박물관》, 《고적보존회》등 전문적인 략탈기구들을 조작하였습니다.
조선강점기간 일제가 략탈해간 문화재는 초보적으로 알려진 자료에 의하더라도 현재 도꾜국립박물관에 진렬된 조선문화재 4만여점을 비롯하여 고려자기, 민족고전 등 수십만점이나 됩니다.
일제는 각종 명목으로 략탈해간 조선문화재들을 뻔뻔스럽게도 일본의 《국보》로 공개하는 놀음을 벌리다못해 돈벌이수단으로까지 리용하였습니다.
일제가 감행한 조선문화재에 대한 혹심한 파괴와 략탈행위는 우리 민족이 우수한 문화전통을 지키고 넋을 이어나가게 하는데서 막대한 피해와 엄중한 후과를 미치게 하였습니다.
《황국신민화》책동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조선민족멸살을 위해 온갖 비렬한 책동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습니다.
《황국신민화》책동이 그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일제는 1939년 11월에 조선사람의 고유한 성과 이름을 없애고 그것을 일본식으로 고칠데 대한 법령을 조작공포하고 총칼의 위협과 강도적인 방법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였습니다.
일제는 모든 경찰서와 주재소, 파출소들의 경찰들을 총동원하여 조선사람들을 총칼로 위협하면서 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징용》,《보국대》등에 누구보다 먼저 끌어갔으며 여러가지 제재조치들을 취하면서 탄압에 날뛰였습니다.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책동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황국신민정신》강요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에게 《황국신민정신》을 강요하기 위해 별의별 너절한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습니다.

《황국신민정신》을 강요하는 일제침략자들
이와 함께 일제는 일본《천황》의 안녕과 일본침략군의 승리를 빌게 한다고 하면서
그런가 하면 일제는 1937년 7월 《황국신민서사》라는 《맹세문》을 만들어 매일 아침 학교들과 기관들에서 의무적으로 일본말로 소리내여 외우게 하였습니다.당시 《서사》에는 《첫째로,
력사에는 사람들의 성과 이름은 물론 그들의 민족정신과 넋까지 빼앗아 한 민족을 영원히 없애버리려고 그토록 악독하게 책동한 일제의 비렬한 범죄행위와 같은 실례가 없습니다.
40여년에 걸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사의 갈피갈피를 헤쳐볼수록 일제야말로 가장 악독하고 파렴치한 침략자이며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는것을 처절히 깨닫게 하고있습니다.
력사는 속일수도 다시 쓸수도 없습니다.
일본의 야만성과 도덕적저렬성, 파렴치성은 세기를 이어 쌓이고쌓인 피맺힌 원한을 기어이 풀고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