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와 조선 - 력사적사실
패전장군들의 말로
  1953년 7월 27일은 미국이 온 세계가 지켜보는 속에서 패배자의 몰골을 드러낸 날입니다.
  72시간내에 조선을 단숨에 정복할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미제는 그 72시간이 수백번도 더 반복되여 흐른 3년만에 저들이 패할줄은 몰랐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들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웠던 많은 《장군》들이 이 3년간의 조선전쟁에서 자기들의 운명을 망쳤습니다.



  미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입니다.
  당시 서방출판물들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인물중의 하나》로, 그 이름만으로도 《20개 사단을 대신》한다고 떠들던 5성장군입니다.
  1950년안으로 《조선전쟁을 종식》시킨다고 떠들면서 5개 군단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크리스마스총공세》를 벌린 맥아더는 작전이 실패하게 되자 쓰디쓴 패전의 책임을 지고 철직되였습니다.
  맥아더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개국이래 미국의 위신이 전세계에서 지금처럼 그렇게 땅에 떨어진적은 없었다.》
 


  조선전쟁은 미해병대 1사단장 스미스에게 《무덤장군》이라는 《칭호》를 안겨주었습니다.
  미해병대 1사단으로 말하면 미국의 《정예》부대들중에서도 손꼽히는 부대로 알려져있었습니다. 18세기 중엽에 조직된 이 사단은 메히꼬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의 돌격대로, 《해병대의 꽃》으로 《자랑》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미해병대 1사단은 《크리스마스총공세》에 참가하였다가 조선의 북부 함경남도의 장진호반에 포위되여 무리로 녹아났습니다. 사단의 1만명 병력이 생포되였거나 -45℃의 혹한속에서 꽁꽁 얼어죽었습니다.
  언땅을 폭파시켜 파헤치고 중상자와 시체들을 한꺼번에 매장해버린 사단장 스미스는 얼마 안되는 패잔병들을 실은 배우에서 《그렇듯 많은 부하의 시체를 버리고 지휘관이 떠나가는 일이란 175년간의 해병대력사에 없는 일》이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조선정전협정에 수표하고있는 패전장군 마크 클라크입니다.
  협정문에 조인한 그는 《나는 력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고 통탄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전쟁에서 참패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클라크를 비행장에서 맞이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몰골에 대하여 후날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습니다.
  《그 당당하던 기개도, 위풍도, 위신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그의 얼굴에서는 두줄기의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살아 돌아간자들은 다행중의 다행이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미8군사령관 워커, 미제9군단장 무어를 비롯하여 적지않은 살인장군들이 조선전장에서 황천객이 되였습니다.
  패전장군들의 말로는 위대한 령장을 모신 조선인민군은 언제나 백전백승하며 우리 인민을 건드리는자들은 반드시 처절한 대가를 치른다는 철리를 력사에 새겨주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