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화 《김치두와 리치두》
옛날 어떤 마을에 김치두라는 청비단장사군과 리치두라는 홍비단장사군이 살고있었습니다.김치두는 앞마을에 살고 리치두는 뒤마을에 살았는데 그들은 둘 다 욕심이 많고 교활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원에게 잘 보이려고 뢰물을 가져다바치군 하였습니다. 뢰물을 바쳐야만 원의 등을 대고 물건을 비싸게 팔아먹을수 있기때문이였습니다.
설명절이 가까와오는 어느날이였습니다.
두 장사군은 또 원에게 뢰물을 바치려고 하였으나 값비싼 비단을 바치기가 몹시 아까왔습니다. 그들은 궁리하던끝에 그럴듯한 수를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남의 물건을 가지고 제 얼굴을 내자는 엉큼한 생각이였습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지자 김치두는 슬그머니 리치두네 담장을 넘었습니다. 그는 창고문에 잠긴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서 붉은 비단 한필을 꺼냈습니다. 다음날 김치두는 그 비단을 원에게 뢰물로 바쳤습니다.
리치두 역시 이날밤 같은 생각을 품고 김치두네 담장을 뛰여넘어 푸른 비단 한필을 훔쳐다가 원에게 바쳤습니다.
그들은 둘 다 남의것을 훔칠 생각만 하였지 자기 집 창고의 비단이 없어진줄은 모르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단을 뢰물로 받은 원은 그 검은 속심을 짐작하고있었습니다.
(붉은 비단장사가 푸른 비단을 가져오고 푸른 비단장사가 붉은 비단을 가져왔은즉 여기에는 필경 무슨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해.)
장사군들 못지 않게 교활하고 엉큼한 원은 사령들을 시켜 당장 김치두를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소인 대령했소이다.》
김치두가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허리를 굽히자 원은 아니꼬운 목소리로 호령하였습니다.
《이놈, 네가 한 짓을 바른대로 아뢰여라.》
가슴이 한줌만해서 덜덜 떨고있던 김치두는 죽을 죄를 지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손을 싹싹 비비였습니다.
《이놈, 네가 나를 무엇으로 알고 도적질한 비단을 갖다바치느냐?》
원이 엄한 목소리로 그를 꾸짖어댔습니다.
속심이 드러난 김치두는 어쩔줄 몰라 부들부들 떨기만 했습니다.
원은 그를 내려다보며 다시 호령하였습니다.
《하라는대로 할테니 그저 목숨만 살려주옵소서.》
김치두는 당장 모가지에 칼이 떨어지기나 한듯이 소눈깔같은 허연 눈알을 굴리며 애걸복걸했습니다.
《이놈에게 곤장 오십대를 쳐서 옥에 가두어라.》
원은 이렇게 명령하고나서 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죽을상이 되여 곤장 오십대를 맞은 김치두는 퍼렇게 멍든 몸을 질질 끌며 옥에 갇히였습니다.
다음날 원은 리치두도 이렇게 불러다가 곤장을 때려 옥에 가두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김치두와 리치두는 한방에 갇히게 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한 짓이 있는지라 마주 쳐다보지 못하고 등을 돌려대고 앉아 한숨만 풀풀 내쉬였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마누라들이 저녁밥을 해이고 옥에 나타났습니다.
김치두와 리치두는 저마다 마누라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 쑤군거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이였습니다.
뢰물을 가득 실은 말파리를 끌고 김치두네 하인들과 리치두네 하인들이 관가로 다가오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될 때라 이 고을에 사냥을 나왔던 감사가 그것을 보게 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감사는 두 집 하인들을 불러 말에 실은것이 무엇인가고 물었습니다.
두 집 하인들은 자기 주인들이 남의 물건을 도적질해서 제 얼굴을 내려다가 그짓이 원에게 탄로되여 옥에 갇히였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속죄하는 뜻으로 다시 뢰물을 바치는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난 감사는 《음》하고 여덟팔자수염을 비비꼬았습니다.
《듣거라. 나라일을 보는 원님을 속이는것도 죄려니와 그것을 기회로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원의 행위도 온당치 못하다. 그러니 이 물건은 나라에 바쳐야 하겠다.》
감사는 이러면서 그 물건을 다짜고짜로 자기 말에 옮겨실으라고 호령하였습니다.
짐승사냥을 나왔다가 뜻밖의 재물을 얻은 감사는 마음이 흐뭇해서 자기 하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에 무엇이 들어있을고?》
《글쎄올시다. 장사군들이 바치는 뢰물이니 아주 희귀한 물건인줄로 아뢰오.》
《허허… 그럼 빨리 주막에 들어가 풀어보도록 하자.》
감사는 말우에서 연신 머리를 끄덕거렸습니다.
한편 감사한테 뢰물을 빼앗긴 원은 분해서 펄쩍 뛰였습니다. 그는 분김에 김치두와 리치두를 옥에서 끌어내여 닥달질을 한 다음 다시 뢰물을 실어오라고 집으로 쫓아보냈습니다.
집으로 쫓겨온 김치두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제 다시 뢰물을 바친다면 장사밑천마저 깡그리 떨어지기때문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감사에게 빼앗긴 재물을 도로 찾아다가 원에게 바치고 다시 장사를 할수 있을가?)
한동안 끙끙 갑자르며 생각을 톺아가던 김치두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서 리치두네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벌써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여 가물거리고있었습니다.
리치두를 찾아온 김치두나 김치두를 맞이하는 리치두는 서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으나 시치미를 뚝 따고 반갑게 만났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그들은 한자리에 마주앉았습니다.
먼저 김치두가 간사한 눈을 쪼프리고 말을 꺼냈습니다.
《형님, 재물을 다 털어바치고 억울하게 매까지 실컷 맞았으니 세상에 이런 원통한 일이 어데 있습니까?》
《글쎄말이요. 나도 그 생각이요.》
리치두도 안타까운듯 음흉한 눈을 내리감았습니다.
《형님, 일이 이렇게 된바에야 우물쭈물할게 뭐 있습니까. 오늘밤
《글쎄 나도 한번 해볼 생각이긴 한데 그게 딴 사람이 아니고 감사가 돼놔서…》
《원 형님두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감사면 어떻고 임금이면 어떻소?》
《하긴 그렇기도 해.》
리치두도 이왕 망한바에는 한번 해보자는 뚝심이 불쑥 솟구쳐올랐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보세나.》
감사한테 빼앗긴 물건을 도로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원의 가슴에서도 타번지고있었습니다.
빼앗긴 물건속에 비단과 범가죽, 인삼, 록용과 같은 보물이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는 욕심이 동해서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원은 생각다 못해 자기가 제일 믿는 하인을 불러들였습니다.
《얘, 너 나와 함께 감사를 쫓아가서 빼앗긴 물건을 찾아오자.》
원은 그에게 돈꾸레미를 쥐여주며 꼬드기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감사는 뜻밖의 재물을 빼앗은 기쁨에 취해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있었습니다.
이때 흰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나이 하나가 칼을 들고 방안에 뛰여들었습니다.
《빼앗은 재물을 도로 내라!》
깜짝 놀란 감사는 얼결에 옆에 있는 목침을 들어 그 사나이한테 내던지였습니다.
《억!》
목침은 면바로 그 사나이의 얼굴에 맞았습니다. 그바람에 손에 들었던 칼이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감사가 재빨리 달려가 그 칼을 집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다시 문이 열리면서 원이 방안에 뛰여들었습니다. 그의 손에도 서슬푸른 칼이 들려있었습니다.
원과 감사는 서로 칼을 들고 엎치락뒤치락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감사가 원의 옆구리를 찌르고 원이 감사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칼에 맞은 그들은 한참 뻐드럭거리다가 둘이 다 죽어너부러졌습니다.
한편 김치두와 리치두는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여 주막에 이르렀습니다.
주막은 쥐죽은듯 괴괴하였습니다.
방문을 열고들어선 두 장사군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방안에는 세 사나이가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져있었던것입니다.
눈이 휘둥그래진 김치두와 리치두는 그런 속에서도 재물이 어데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암만 살펴봐야 보따리 하나밖에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약아빠진 감사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벌써 짐을 딴데로 빼돌렸던것입니다.
김치두는 이렇게 된바에는 방안에 남은 보따리 하나라도 제가 차지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방안에 나딩구는 보따리를 제가 먼저 집어들고 산으로 냅다 뛰였습니다.
한참이나 눈이 휘둥그래서 멍청히 서있던 리치두도 김치두의 뒤를 따라 달음질쳤습니다. 그 보따리를 빼앗자는 속심이였던것입니다.
리치두가 따라오는것을 본 김치두는 벼랑쪽으로 달려가서 주춤하고 섰습니다. 기회를 봐서 리치두를 없애버릴 생각이였던것입니다.
그들은 보따리 하나를 놓고 벼랑가에서 싸움을 벌리였습니다. 리치두가 타고앉으니 김치두는 죽을 힘을 다해 그를 떠밀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그러안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그만 천길벼랑에 굴러떨어졌습니다.
벼랑밑에서는 사품치던 물결이 기다렸다는듯이 그들을 집어삼켰습니다.
다음날 아침 딴집에서 자다가 깨여난 감사네 하인들은 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되였습니다.
《도적놈들끼리 싸우다가 뒈지고 말았는걸!》
그들은 어이없어 입을 쩝쩝 다시였습니다.
그대로 돌아가면 감사를 잃은 죄로 목을 내놓게 되리라는것을 깨달은 그들은 재물을 나누어가지고 저마다 뿔뿔이 헤여져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