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청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백살할머니의 자랑
  우리 인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많이 소개해줄것을 계속 요청해오고있는 벗들에게 한 장수자할머니의 자랑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도 평양의 만경대구역에서 살고있는 리정녀할머니입니다.
  리정녀할머니는 지난 9월 17일 백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할머니가 늘 사람들에게 하는 자랑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백살할머니의 특별한 장수비방에 대한 자랑일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자랑은 류다릅니다.
  《대학생일가》, 바로 이것이 할머니의 자랑중의 자랑입니다.
  그에게는 자식 9남매를 포함하여 자손이 50여명이나 됩니다.
  중학교, 소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증손자, 증손녀들을 제외한 37명의 자손들이 대학을 졸업했고 3명은 현재 대학에서 공부하고있습니다.
  졸업생들가운데는 교원, 의사, 연구사, 건설기사, 기계기사, 재단사 등 여러 분야의 인재들이 많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대학생일가라고 하며 부러움과 감탄을 금치 못해합니다.
  이 기사를 읽는 여러분들은 아마도 할머니가 좋은 가문에서 태여나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후손일것이라고 추측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식민지통치시기에 막벌이군의 가정에서 태여나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할머니와 그의 남편은 나라없던 그 세월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아온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을 나라의 주인, 공장의 주인으로 내세워준 조국이 고마워 한생토록 식료공업부문에서 로동자로 성실하게 일해왔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로동자의 가정에서 어떻게 자식들모두를 대학까지 공부시킬수 있었는지…
  할머니가 늘 잊지 못해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체48(1959)년 나라에서는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한 온 나라의 학생들에게 일제히 교복을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네자식도 한날한시에 새 교복을 받아안았습니다. 교복들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너무도 고마워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체66(1977)년에도 나라에서는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전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새옷과 함께 가방을 비롯한 학용품을 일식으로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할머니의 세자식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있었고 여섯자식이 새옷과 학용품을 가슴한가득 받아안았습니다. 그것을 다 펼쳐놓으니 집이 좁았고 그것을 다 쌓아놓으니 집이 낮았다고 합니다.
  새옷과 학용품을 품에 꼭 안고 단잠에 든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우리 자식들을 곱게곱게 키워주는 진짜부모는 조선로동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할머니는 목이 꽉 메여올랐다고 합니다.
  당의 은정은 세월을 이어 손자, 손녀대에 이르기까지 년년이 계속되였습니다.
  이뿐이 아니였습니다.
  무료의무교육제,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혜택, 다자녀세대들에 대한 우대조치 등 국가의 인민적시책은 할머니의 가정에 날마다 기쁨과 웃음이 차넘치게 했습니다.
  할머니는 당에서, 나라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을 다 해주었다고, 천만가지 고생과 품을 기울여 자식들을 키워주고 내세워주었다고 하면서 늘 이렇게 말하군 합니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는,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합니다.
  대학생 한명을 공부시키자고 하여도 돈이 아름찬데 대학생 9명이 어딥니까.
  우리 가족에는 아들, 딸, 손자, 증손자까지 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중에 있는 성원이 30명이 넘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게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자손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 제도를 영원히 영원히 잊지 말라고, 일생토록 일을 잘하라고 입버릇처럼 당부하군 합니다.》



  백살할머니의 자랑에서 우리는 한 일가의 행복하고 긍지스러운 오늘만 보지 않습니다. 우리 당이 어렵고 힘겨울 때에도 변함없이 온 나라 가정들, 매 사람에게 베풀어준 인민적시책의 력사, 그 혜택속에 대대손손 복락을 누려갈 우리 후대들의 밝은 래일을 보고있습니다.
  백살할머니의 자손들은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를 대를 이어 전해갈것입니다. 이 제도를 지키고 빛내이기 위한 우리 인민의 헌신도 끝없이 이어질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