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치 - 기타
천리마시대의 그 나날을 잊지 못합니다
 


  평양시 평천구역 북성1동에서 살고있는 방하수로인입니다.
  올해 일흔살인 로인이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0년 말 나어린 한 소년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전신 48%에 3도화상을 입고 사경에 처하였습니다.
  어린 생명을 구원하자면 많은 면적의 피부이식수술을 하여야 했습니다.
  주체50(1961)년 1월 30일 그리 크지 않은 병원의 수술실로는 소년에게 자기의 피부를 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병원의 의료일군들도 있었고 병원에 실습나온 대학생들도 있었으며 병원의 입원환자들도 있었습니다.





  모여온 사람들이 저마끔 앞에 서겠다고 우기는속에 수술실앞은 혼잡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기를 그 몇번…
  그런 짬에 집도자인 외과 과장까지 자기의 몸에서 남몰래 피부를 떼냈습니다.
  아픔인들 오죽하랴마는 그들의 얼굴은 하나와 같이 밝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부를 이식받아 소년의 몸은 피여났지만 아직도 안심하기에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수술집도자인 외과 과장은 한시도 소년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의 일군들도 역시 거의 그의 곁에서 살다싶이 하였습니다.
  온 나라가 소년이 하루빨리 소생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방방곡곡에서 보내온 1만통이나 되는 편지와 수많은 약과 식료품들이 소년에게 안겨졌습니다.
  몇달후 소년은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고 만사람의 축복속에 퇴원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부가 그의 온몸을 감싸고있었으며 소년의 혈관에서는 그들의 피가 흐르고있었습니다.
  그때 그 소년이 바로 방하수로인이였습니다.
  《8살난 저를 살리겠다고 피를 주고 살을 주었습니다. 내몸의 절반이나 되는 부분에 피부를 이식한다는것이 정말이지 간단한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수술에 참가했는데 한 250명정도였다고 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얼굴도 이름도 주소도 몰랐습니다. 저와 친척관계가 아니였습니다.》 
  이렇듯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것을 평범한 생활의 한 부분으로, 누구나 할수 있는 례사로운 일로 여기던 아름다운 시대, 남이 자기로 되는것이 전인민적인 사상감정으로 되였던 고결한 인간사랑의 시대가 바로 천리마시대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왔습니다.
  그러나 천리마시대 사람들이 발휘한 숭고한 정신세계와 투쟁기풍은 년대를 넘어, 세대를 이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로 굳건히 계승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