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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살의 녀교원
  언제인가 일본에서 살고있는 《조선의 소리》청취자 지다 고세이는 조선음악을 즐겨 감상하는 과정에 김광숙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명가수들을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그들을 키워내는 교육자들에 대하여 알고싶다는 내용의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훌륭하게 음악을 형상하는 가수들이 누구에게서 교육을 받았는가, 이것은 많은 벗들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그럼 벗들에게 한 녀교원에 대하여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는 바로 평양제2음악학원의 성악지도교원 김초심선생입니다. 올해 90살이지만 정열에 넘쳐 아이들을 가르치고있습니다.


평양제2음악학원 교원 김초심

  김초심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성악지도교원이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통치가 실시되던 1930년대에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노래를 사랑하였고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목청껏 노래하고싶어하였습니다.
  하지만 돈없는 가난뱅이, 조선사람이라는 《리유》로 어린 그는 꿈을 이룰수 없었습니다.
  주체34(1945)년 8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빼앗겼던 나라를 찾아주시여 비로소 그는 학교에 가서 노래도 배우고 인민이 주인된 새 나라를 마음껏 노래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미제가 1950년 6월에 일으킨 침략전쟁은 그만이 아닌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행복의 터전인 조국을 다시는 침략자들에게 빼앗길수 없었기에 그는 용약 전선으로 달려나가 원쑤격멸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승리를 위하여 싸웠습니다.
  전후 어느한 예술단체에서 배우생활을 하던 그는 전쟁시기 입은 부상의 후과로 하여 더는 무대에 나설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락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부르지 못한 노래를 새세대들이 계속 부르게 하자,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이 펼쳐지는 이 땅을 목청껏 노래하는 유능한 성악가수후비들을 키워내는데 나의 생을 바치자, 이것이 무대를 내리면서 다진 선생의 확고한 결심이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평양인흥중학교(당시)에서 교원생활을 시작하게 되였고 평양학생소년궁전, 평양제2음악학원 등에서 50여년간 교육자로서의 생을 이어오게 되였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더 많은 아이들의 재능의 싹을 찾아 훌륭히 꽃피울 한마음뿐이였습니다.
  하기에 그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으로 우리 민족의 감정과 정서에 맞는 발성법과 창법, 10대초엽의 학생들을 조기변성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 각이한 나이와 성격, 취미 등에 따르는 많은 성악리론들과 교수방법들을 내놓을수 있었습니다.
  김초심선생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진행된 설맞이공연들과 중국, 꾸바, 뻬루,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는 학생소년예술단의 독창, 중창, 합창 등 많은 노래곡목들을 훌륭히 형상지도하여 사회주의제도에서 재능의 나래를 활짝 펴고 행복하게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참모습을 잘 보여주게 하였습니다.

해외공연의 날들에 대한 추억

  또한 특출한 재능을 가진 성악가수후비들을 체계적으로 전망성있게 키워냄으로써 그들이 여러 예술단체들에서 나라의 음악예술발전에 이바지할수 있게 하였습니다.
  김초심선생이 키운 어린 학생들이 례외없이 성공의 탑을 쌓았다는 사실은 그가 독특한 교수묘리와 완강한 실천력을 체현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초심과 그의 명배우제자들

  그의 제자들가운데는 한때 일본각지에서 동포사회를 들썩케 한 이전 보천보전자악단의 김광숙, 전혜영, 조금화, 리분희를 비롯한 명가수들과 오늘날 중요예술단체들에서 인기있는 공연활동으로 관중의 절찬을 받고있는 명배우들이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 무대를 내린 명배우제자들도 적지 않지만 오늘도 우리 인민은 물론 외국의 벗들도 그들을 기억하고있으며 그들이 형상한 노래들을 사랑하고있습니다.
  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로력영웅, 인민교원, 공훈예술가의 칭호를 안겨주었습니다.
  축하의 꽃다발을 받을 때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오랜 년한이나 값높은 명예칭호, 번쩍이는 훈장보다도 품을 들여 키운 제자들이 조국과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사랑을 받는데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